신명나는 눈빛

2008. 6. 4. 20:29 이런저런/수다 떨기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찬이 없다며 걱정하는 아내에게, 그러면 총각김치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총각김치를 좋아하거든요. 아작아작 씹히는 소리부터 맛있지 않습니까? 내일. 즉, 오늘은 바빠서 안 된다며 식사 후에 시장에 가자고 하네요.

8시 반이면 늦은 시간이고 비도 내리지만 터털거리는 손수레를 끌고 시장에 갔습니다. 가까운 곳에 재래식 시장이 있어서 주전부리 생각이 날 때도 가끔 갑니다. 어디서 살까 기웃거리다가 길 한쪽에 채소를 펼쳐놓고 파는 아저씨가 있어서 그 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피곤하셨는지 무덤덤한 얼굴에 약간은 흐릿한 눈빛으로 엉덩이만 살짝 올리고, 고개만 빼고는 뭘 찾느냐고 하시더군요. 알타리무우를 찾는다고 하면서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그제야 몸이 무겁다는 듯 힘들게 걸어오면서 가격을 얘기해 주더군요. 만원에 5단이지만 떨이로 6단을 주겠답니다. 이런 흥정이 있어서 재래시장을 찾는지 모르겠습니다. ^^

알타리무우뿐만 아니라 쪽파와 마늘, 오이를 추가로 구매할 때마다 아저씨 얼굴이 조금씩 펴지더군요. 저야 손수레에 차곡차곡 담기만 했습니다만 집사람과 아저씨의 가격 흥정하는 모습에 발길이 멈추었는지, 아니면 그냥 발이 멈추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나가던 아줌마가 열무 한 단을 짚으면서 가격을 물었습니다. 그리도 또 다른 한 분이 양파 한 단을 달라고 하더군요.

아저씨는 마늘을 집사람에게 주기 위해 마늘 줄기에서 마늘만 자르고 있었는데, 가격을 불러 주면서 연신 잠시만요, 잠시만요 하시더군요. 그리고 마늘을 들고 내게로 왔는데, 몸만 올뿐 얼굴은 이미 다른 아줌마를 보면서 다시 가격을 불러 주더군요.

그때 그 아저씨의 눈빛은 순간 매우 신명이 난다는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눈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늘은 영 신통치 않다는 표정이었는데, 이제는 약간 정신이 없어 보이듯 부산을 떨면서 눈빛이 반짝거리는 군요.

장사하는 분께 뭐 있겠습니까?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최고 아니겠습니다. 맨날 답답한 소식만 접하다가 아저씨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저에게도, 이 글을 보시는 분께도 신명나는 일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글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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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연
    • 2008.06.04 21:35
    저도 의욕이 떨어지거나 삶이 고달프다고 느켜질때는 동네 시장을 돌면서 자신을 조금씩 추스리곤 한답니다.
    마트나 쇼핑몰 같은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데..머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말입니다.
    암튼, 이번 주말엔 시장에 들러 여친이랑 데이트하면서 오이소백이 재료도 사고 해야겠습니다.
    참. 지난번 티스토리 초대장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마트는 깨끗하고 정리된 모습이지만 왠지 거리감을 느끼죠.
      그에 비해 재래시장은 지저분하고 흐트러져 있지만
      왠지 만만해 보이고 사람사는 곳처럼 느껴지는 것이
      재래시장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길가의 꽃
    • 2008.06.04 21:51
    저는 지난 주말에 처갓집에 갔다가 처형이 총각김치 싸주셔서 지금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ㅋ
    입맛 없을 때는 그저 시원한 총각김치나 열무김치가 딱이죠...^^
    사진을 보니 사모님 음식솜씨가 좋으신것 같습니다^^ 맛있게 드세용~~~.
    • 총각김치, 열무김치 좋죠.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
  1. 저런 맛깔스러운 사진은 크게 올리셔야지 시기를 많이 받을 수 있답니다.^^
    • 마이너스손
    • 2008.06.04 23:10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엔지니어들은 수학만 잘 할 줄 알았는데(^^)
    감정도 풍부하시고 글도 잘 쓰시네요..^^
    그러게요..
    우리 서민들이 더욱 더 행복해 할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아코~ 과찬이세요. ^^; 서민이 행복해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호세아
    • 2008.06.04 23:53
    음...최근 들어서 속내를 많이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말입니다.

    오늘 시장 풍경이 떠올라서...좋았습니다.
    • 많은 분이 고생하시고 저의 아이들이 걱정되서 촛불집회 관련 글을 올렸습니다만
      좋은 소식이 오기를 바랍니다. ^^
    • 나그네
    • 2008.06.05 01:13
    그렇지요..

    총각김치 저도 킬러인데 참 맛깔스러워 보이네요!
  2. 아침부터 이게 무슨 염장이십니까...ㅠㅠ
    아...제가 아침에 본 거군요.
  3. 음.. 정말 날이 궂어서 쌀쌀하고 찝찝한데
    훈훈하고 뽀송뽀송해지는 이야기네요.
    • 좋은날
    • 2008.06.05 08:59
    정말 맛나게 보이네요 ㅠ.ㅠ
    여긴 그런 무우가 없어서 ㅠ.ㅠ
    다음에 한국가서 먹어버리고 말테닷!!
    • 안티조중동
    • 2008.06.05 09:08
    저는 왜 이런 글들을 보면 눈물이 찔금 거릴까요?~
    아침에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리딩웨이브
    • 2008.06.05 09:32
    참 따뜻하게 글을 잘 쓰세요, 정말.
    프로그램으로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세상을 이롭게' 해 주시는 거, 정말 대단하세요...^^
    • 아우, 과찬이 너무 과하세요. 부끄럽습니다. ^^;
  4. 맞아요. 그맛에 재래시장가죠. 덤으로 주는 모습 마트가 덤도 정형화되어 있다면 재래시장은 그때그떄 다르지요.
    그맛이죠. 사람사는 맛 아나로그의 향기가 남은 재래시장이 좋아요
    • 아나로그 향기. 와, 참 훌륭한 표현입니다. ^^

      네, 썬도그님의 말씀처럼 깔끔한 유니폼이 아니라 저와 이웃처럼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모습으로 어울리는 곳이 시장이라서 사람사는 맛을 느끼지 않나 생각합니다. ^^
    • 할리디
    • 2008.06.05 10:47
    글 잘 쓰셨네요.
    아침에 이 글을 읽게 되었는데, 제 마음이 밝아지는군요.
    • 아코~ 부끄럽습니다. 칭찬의 말씀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
    • gaesama@gmail.com
    • 2008.06.06 03:05
    따뜻한글 잘 읽고 갑니다.
    저희 어머니도 재래 시장에 계셔서 많이 공감가는 내용이고요
    jw브라우저를 쓰면서 참.. 뭐랄까 인생 선배님께 많이 배우는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도 구독했어요^^
    앞으로도 좋은 매너웨어 개발하셔서 더더욱 많이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 ^_^
    • 아! 경향신문을 구독신청하셨군요.
      같은 신문을 애독하게되서 기쁩니다. ^^
    • 헤로
    • 2008.06.06 03:41
    우선 처음 쓰는 코멘트인 만큼 제공해주시는 jwbrowser 감사히 잘 쓰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끝에 말씀하신대로 요즘 계속 답답한 이야기만 듣다가
    지금 첫번째 글 읽으면서 잔잔히 웃고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뭔가 생기넘치고 따뜻한 느낌이랄까요.
    재래시장에서 단골가게인 야채파는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 잠시만이라도 즐거운 생각을 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
    • 바보천사
    • 2008.06.06 14:50
    총각김치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
    훈훈한 향기가 나는 님의 글 잘보고 가며
    행복한 하루 되시고 늘 님의 프로그램 소중히 감사하며 잘 쓰고 있습니다.
    • 정말 맛있어요. ㅋㅋ
      바보천사님께서도 매일매일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