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사려다가 마음만 상하다

2010.03.24 21:57 이런저런/수다 떨기

결혼하기 전부터 유부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제가 제 나이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편입니다. 다크 써클 때문인지 총각 때부터 아저씨라는 말을 일찍부터 들었는데, 이제 나이 먹어서는 앞머리까지 훵하다 보니 더 늙어 보이네요. 인물도 없어서 그 흔한 잘 생겼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고, 대신에 인상 좋다는 말은 신물이 나도록 들었습니다. 인상 좋다는 말이 반드시 칭찬이 아닌 경우도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모자 어떨까?

퇴근하는 전철에서 창문으로 비친 저의 모습을 보니 더욱 나이 들어 보이네요. 머리 숱이 많으면 그나마 좀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서 탈모에 신경을 써 보았지만 별로 효과를 못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추기로 했습니다. 모자를 사기로 결심한 것이죠. 평소에 반 정장을 하고 다니므로 헌팅캡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언젠가 길에서 헌팅캡을 멋지게 쓰고 지나가는 분을 본 적이 있어서 솔직히 그 영향도 컸습니다.

동대문 시장으로

인터넷으로 구매할까 했지만, 직접 써 보지 않고 사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아내가 아이들 옷을 사러 나갈 때 따라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자만 따로 판매하는 곳이 없네요. 그래서 트위터에 질문을 올렸습니다. 역시 트위터. 여러 곳을 알려 주셨는데, 홍대와 동대문 시장이었습니다. 홍대는 길을 모르고 만만한 것이 동대문 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오늘 시내에 일이 있어서 일을 마치고 일부러 돌고 돌아 동대문 시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옷을 사러 돌아 다녀 봤어야지요. 어디로 가야하나? 다행히 근처 식당 아주머니께 여쭈었더니 1층으로 가 보랍니다. 좁은 복도가 무척 길었습니다. 그리고 좌우로 모자 가게가 심심치 않게 있더군요.

없습니다.

걸어 가면서 마음에 드는 모자를 찾아 보았는데, 건물 두 개를 모두 지나가도 도대체 모르겠더군요. 돌아 서서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헌팅캡이 제일 많은 가게를 기억하고 그 앞으로 갔습니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책상에 고개를 숙인 채 뭔가에 열심히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용기 내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맞는 모자를 찾으려고 열심히 두리번 거렸습니다. 그제서야 가게 주인은 제 얼굴을 잠시 흘깃 보더니 이내 책상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무덤덤하게 뭘 찾느냐고 물어 보더군요.

"헌팅캡을 찾습니다. 모자가 처음이라 좀 골라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얼굴이 동그랗고 큰 편이라서요."

가게 주인의 대답은 매우 짧았습니다.

"없어요."

"네?"

순간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저에게 어울리는 모자가 없나요?"

가게 주인은 고개를 들고 저를 보았지만, 역시 짧게 대답하더군요.

"없습니다. 어떤 모자를 써도 맵시 나기 힘들어요."

민망해서 넉살 좋게 웃으면서 "알겠습니다" 대답까지 하고  나왔습니다만, 기분이 매우 상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습니다만, 기분이 풀리지 않아 한 정거장 더 걷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두 정거장을 걷고 나니 풀리더군요.

정말 좋은 인상을 가지도록 노력하기로 결심

비록 마음에 드는 모자를 구입하지 못해 아쉽지만, 대신에 정말 좋은 인상을 가지는 쪽으로 결심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빈말이 아닌 진심으로 인상이 좋다는 말을 듣도록 말이죠. 그럴려면 화(火) 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래서 좋은 인상이 자꾸 겹쳐 져서 얼굴에 조금씩 쌓아져야 하는데, 자신이 없네요.

그래도 제  딸아이가, 아빠는 해적처럼 동그랗게 수건을 둘러 맨 것이 귀엽다고 해준 말로 위안을 삼으로 합니다. 다시 물어 보니 멋지답니다.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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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
    • 2010.03.24 22:11
    MLB 모자는 어떠신가요? 가장 무난하고,, 머리가 크더라도 사이즈별로 있고,,
    그런데 외국에서는 나이 많은 40대 50대 아저씨들도 그냥 MLB모자 많이 쓰는데..
    한국에서는 40대 이상은 모자를 쓰는 경우가 거의 드물더군요..
    그리고 뭔가 젊어보이는 느낌이 들구요.
    왠지 40대이상분들은 가벼워보이는 이미지를 싫어하셔서 모자를 쓰지 않는것 같기도,, 뭔가 있어보이고,
    중후하고,, 젠틀하게..보일려고 모자를 잘 안쓰시는것같은데.

    사실 40대이상 연예인들은 MLB모자도 그냥 무난히 많이 쓰죠..
    •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모자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서 헌팅캡만 보았는데, 말씀에 따라 MLB도 알아 봐야 겠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1. 저는 머리가 큰편이라 보세모자들은 거의 안맞습니다.요새는 잘 안쓰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머리에 맞는거 있으면 다 헤질때까지 썻었습니다.ㅠㅠ
    아마 그 가게 주인아저씨는 인상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게 아니고 도소매장사하시는분 같지가 않아서 그냥 불친절모드로 반응하신거 같습니다. 너무 맘에 두지 마세요.
    •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동대문 시장이라 도매가 많다 보니 그런 사정도 있을 수 있겠네요. ^^
  2. 안녕하세요. 오
  3. 동지가 계셨군요..ㅜ.ㅜ;

    저역시 모자를 쓰고싶지만 당췌 어울리는 모자가 없습니다

    두상도 크기도 하고, 머리모양이 안예쁘다고 누군가 얘기했던것 같네요..

    꼭 모자가 필요하면 썬캡이라고 하나요? 자외선차단하는 그런거 말고

    그런식으로 모자 챙은 있고, 머리덮는부분은 없는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그건 좀 낫더라고요^^ 참고하세용....
    • 비즈맨
    • 2010.03.24 23:12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여기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로 이주한지 약 보름이 넘었는데요. 인터넷 신청한지 보름만에 집에와서 설치를 해주는군요. 물론 ADSL에 속도는 형편이 없죠. 속도에 따라서 요금이 다르기 때문에 종량제가 아니라 꾹참고 열심히 서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jwBrowser애용자라 여기서도 잘 쓰고 있구요.
    저도 머리털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도(불과 보름전이지만) 늘 모발보호샴푸를 구요. 이삿짐을 거의들고온것이 없어 여기와선 늘 비누로만 머리를 감았는데 신기하게도 머리가 잘 안빠지는군요. 날씨에 따라 문제가 틀리더군요. 여긴 매일 30도를 오르내리니 두피에도 온기가 더해 머리털이 뻣벗해짐을 느낍니다. 머리털에 온수마사지를 지속적으로 하는 효과랄까. 아뭏튼 편하게 살기는 힘든 곳인데 신체적으로는 건강해지는 듯해 기분이 좋습니다. 시간되시면 한 번와보시기를.
    • 오~ 말레이시아에 계시는군요. 이제 보름이시라면 아직 어려움이 많으시겠어요. 물을 갈아 드신 것이나 음식 때문에 고생하시지는 않으시는지요?
      아, 비누로 효과를 보셨군요. 저도 비누로 다시 도전해 봐야 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세요. ^^
  4. 저도 잘 어울리는 모자가 거의 없어서 그나마 조금 어울리는게 헌팅캡인데

    이마저도 잘 어울리는걸 찾기 힘들더군요.


    그래도 맞는 모자사려면 이태원에 가야만 하는 대두 후배보단 낫지..라고 위안 합니다. ㅎㅎ
    • 오피
    • 2010.03.25 01:27
    마음을 다치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또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어릴적에는 나름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있었고 저 또한
    그렇게 배려받기를 원했는데

    나이들며
    보다 넓은 세상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경쟁과 생존 또는 욕망에 충실하다보니

    어느덧
    마음에 구둥살이 않았는지
    타인의 무례함에도 둔감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에도 인색해지더군요

    정의감 영웅 희망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영화에서 가끔 발견하며 빠져들긴하지만

    영화의 엔딩과 더불어 다시금 회색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둔감해지더군요

    영화는 현실과 많이 다르니...다만..

    가끔씩...회색빛 삶의현장에서
    사람의 심장을 온전히 소유한 분들을
    정말 우연찮게 조우할때가 있는데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따뜻한 노란색으로
    아름답게 보이더군요

    갈석님의
    금일 아픔은 님의 심장이 아직은
    사람의 온기를 그대로 품고잇음의
    또 다른 증거이니 ...오히려 기뻐하심이


    순간...오바하는것일까라는 생각이들긴
    합니다만....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면 말고.....!!!...ㅌㅌ

    훌훌 터 세요....세상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사람도 많고
    더러는 이해할수없는 상황도 많고

    때로는...상처를 준사람도 상처를 받는 사람도
    양자 모두 의도치 않는 불일치된 상황에서 시작된

    엇갈린 오해...또는 상황적 조건에서

    발생하는 오해로 상처를 받기도 주기도
    하기에 ....

    훌훌 터시고....좋아하는 장르의 음악 또는
    영화를 보시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금방 일상의 평상심으로 돌아옵니다

    전..최소한 그렇더군요
    마음에 구둥살이 너무 많이 않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자기 중심적이라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지금이 새벽인데...내일은 주말에 성큼 다가간
    금요일....주말을 댕겨서 즐 기분 내시면
    한결 지금보다 더 가벼워질것입니다

    가슴에 노란 색하늘을 품고잇는
    둔감한 동키호테..오피가
    • 자상한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을 보고 한때 옹졸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아울러 좋은 말씀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습니다.
      아! 내일이 벌써 금요일이네요. 주말을 생각하면서 기분을 상쾌하게 환기합니다. 감사합니다. ^^
  5. 허걱.. 어쩌다가.. -.-;;;
  6. http://blog.naver.com/sasamik0/20043470705

    이렇게 한번 카운터 날려주셨어야... ㅠ.ㅠ
    • dugii
    • 2010.03.25 14:53
    장사 혹은 영업계열을 오래한 입장으로서..
    그 주인.. 너무 솔찍하시고 좋은 분이시거나.. 장사하기 싫은 직원 혹은 알바이거나 이겠네요..
    보통은 그냥 대충 골라주고 이거 너무 잘어울리시네요 라고 하져..
    • 두운초온
    • 2010.03.25 15:35
    운 없게 사자 꼬리를 밟은 셈으로 치세요.
    모자 파는 사람이 퉁명스럽게 팔지 않겠다고 함은 필시 깊은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 때 길석 님께서 잘못 건드린 겁니다.
    피하신 것이 현명했네요.
    ㅉㅉㅉ
    • 알바1호
    • 2010.03.25 15:49
    저 같은 경우는 성격이 나빠서 주인한테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소리 하고 나올것 같네요.
    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하는 가게 주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 지금은 몰라도 다음에는 귀한 손님이 될 수 있을 텐데, 물건을 구매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귀한 손님으로 친절하게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
    • 토끼간식
    • 2010.03.25 16:47
    맘 상해하지마세용!! 화이팅!(?)
    저도 오늘 밖에 오랜만에 나갔다가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우울들한지 웃는 사람도 없거니와 또 그렇게 불친절한 건 아니었지만 건성건성 좋아보이지는 않았어요.
    그저 항상 같은 일을 하다보니 그냥 그러려니 아니면 오늘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어요. 그래도 맘 한구석엔 걍 저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요.
    주인장님은 그 상황에서 무지 멋지게 대처하신 거 같아요.
    저 같으면 화나서 오늘 잠도 못잘 거 같아요ㅠ_ㅠ 주인장님 멋져요+_+ 저도 본받고싶어요.
    그 가게 주인은 손님을 그렇게 보내고나서 속으로 후회할 수도 있어요. 화살은 쏜 사람에게 되돌아가거든요.. 여튼..
    어울리는 모자 찾으실 거에요^-^♡
    • 격려와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또한 칭찬의 말씀도 주셨는데, 너무 과하게 과찬해 주셔서 부끄럽습니다. 토끼간식님 덕분에 저에게 잘 어울리는 모자가 생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강아지
    • 2010.03.25 20:33
    제가 다 속상하네요;;;;
    저도 장사를 해봤지만 말한마디에 안살것도 사게(표현이 좀 그런가 ㅋㅋㅋㅋㅋㅋㅋ)하는건데
    겉치레라도 아니 진짜 그런 모자 없더래도 굳이 그런 표현밖으로밖에 말할 수 없었는지 -_-;;
    주인이 안좋은 일이 있었나봅니다
    ..라고 생각해도 기분이 나쁘다!;;
    길석님이 대인배네요 그 상황에 그러려니 웃고 나오시다니 ㅎㅎ
    저같아도 완전....
    .......문 쾅 닫고 나옴(끝?;;
    그래도 괜찮아요 길석님 위로하는 사람이 제위로도 한참이네요 ㅎ
    • 위로의 말씀과 좋은 말씀을 많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 입장에서 저를 이해해 주시고 편을 들어 주셔서 더욱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
    • Mike
    • 2010.03.26 02:59
    가게주인 아주 몰상식한 사람이네요. 21세기에 저런 수준낮은 장사꾼이 있다니...
    얼마안가 망할겁니다. 망하길 바랍니다.
    • 싸움꾼
    • 2010.03.28 01:55
    그런 가게가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힘내세요. ^^
    • 호세아
    • 2010.04.11 12:06
    참 기가 막힌 상황이군요. 웃어야할지...